0 9 . 1 0 . 2 4 . 토 | 칠레 산티아고(산띠아고) Chile Santiago
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다시 누웠다.
몸은 무겁고 의욕은 생기지 않는다. 만사가 귀찮다.
스스르 잠이 몰려왔다.
유럽 여행 후반부, 남미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.
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지의 세계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컸다.
여행 시작한지 반년이 다 되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다.
물가를 생각한다면 유럽은 함부로 퍼질러 앉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.
조금만 더 힘을 내서 열심히 다니고 남미에 가서 푹 퍼져 몸과 마음을 달래기로 했었다.
본격적인 휴식은 내일 갈 콜롬비아에서 가질 요량이었다.
하지만 우린 이미 남미에 와 있다.
거기다 남미 여행의 핵심 중 하나인 이스터섬까지 다녀와 많이 풀어졌다.
가이드북에는 산티아고의 '가 볼 곳'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
풀어진 나사는 좀처럼 조여지지가 않는다.
결국 1시 넘어서 일어났다.
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손 보는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.
지금은 여행중이고 우리는 여행자인데 이렇게 숙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영 불편하다.
학교를 땡땡이 친 학생 같다. 어제도 설렁설렁 다녔기에 불편한 마음이 더 커졌다.
특별할 것 없는 도시. 뭐 볼 게 있겠느냐는 마음과
그래도 산티아고만의 무언가를 찾아봐야하지 않겠느냐는 마음이 충돌을 일으켰다.
결국 라니는 숙소에 있기로 하고 혼자서 나섰다.
시계는 이미 3시가 넘어 있었다.
산타 루시아 언덕(Cerro Santa Lucia).
클릭하면 큰 사진.
혼자여서 그런지,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
녹음이 짙은 공원은 활력을 잃은 듯 보이고
흙탕물인 강은 마음마저 탁하게 만들었다.
산티아고가 훤히 내려다 보일 언덕 오르기는
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갔다가 접었다.
미술관은 그냥 지나쳤다.
마트 이름으로는 너무 이쁜 것 같은 Santa Isabel에 들러
우산과 여행용 작은 비누곽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.
달랑 치약만 하나 샀다.
어제 지나다녔던 시내를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왔다.
한국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았던 라면 이틀 연속 먹기.
저녁으로 또 너구리를 아낌없이 풀었다.
라면을 만드신 분은 정말 위대한 분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후루룩거렸다.
설겆이를 하고 주방에 앉아 인터넷을 쓰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.
그리고 곧 라니를 포함한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.
거의 2달 전 아테네의 민박집에서 만났던 여자 2분이 나타난 거였다.
콜롬비아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이란다.
볼리비아에서부터 24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까지 왔단다.
우리의 미래가 갑자기 현재로 쑥 넘어온 것 같았다.
우리도 내일 콜롬비아로 가서 에콰도르, 페루, 볼리비아를 거쳐 다시 칠레로 내려올 계획이다.
그들로부터 그간의 남미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'여행 에너지' 충전을 시작했다.
콜롬비아에서 푹 쉬면 아마 충전이 완료 될테다.
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.